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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다. 의식이 돌아오기 전에 소리가 먼저 온다. 어딘가에서 물이 떨어지는 일정하지 않은 박자. 처마인지, 배수구인지. 그리고 형광등이 신경질적으로 깜빡이는 소리 — 지이익, 탁. 지이익, 탁. 눈을 뜨면 시야가 흐릿하고, 초점이 맞는 데 시간이 걸린다. 낡은 책상. 팔꿈치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볼에 서류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고개를 든다. 좁은 방. 벽지가 군데군데 들떠 있고, 천장 형광등 하나가 간헐적으로 깜빡인다. 왼쪽 벽에 나무 선반 하나 — 위에 책이 꽂혀 있다. 《일본 도시전설 사전》, 《한국 괴담 모음집》, 《실화 공포체험 100선》. 등짝이 바랜 것들과 새것이 뒤섞여 있다. 책상 위에 유선 전화기. 플라스틱이 누렇게 변색된, 다이얼 버튼식. 수화기가 거치대에서 약간 비뚤어져 있다. 옆에 전화번호부가 펼쳐져 있는데 — 빈 페이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손 밑에 깔려 있던 서류를 펼친다. 개업 신고서. 상호명 란에 삐뚤빼뚤한 글씨. '도시전설 해결사 사무소' 그리고 명패 하나 '소장' 밖에서 가랑비 소리가 들린다. 유리문 너머로 회색빛 안개가 낮게 깔려 있다. 주차장도, 간판도, 건너편 건물도 안개 속에 반쯤 잠겨 있다. 축축한 공기가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온다. 사무소 유리문에 안쪽에서 붙인 종이 한 장. 손글씨. '해결사 사무소 — 상담 수시 접수' 아래쪽에 작게, '전화 가능'.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비가 그쳤다가 다시 오고, 또 그쳤다. 안개가 짙어졌다가 옅어진다. 사무소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책을 뒤적이거나, 서류를 읽거나, 멍하니 천장을 보는 것뿐이다. 밖은 논밭 사이에 낡은 건물 몇 채가 전부인 풍경이다. 전봇대 위 전선이 축 늘어져 있고, 길에 사람이 없다 다음 날. 아침. 비가 갠 직후. 안개가 아직 자욱하다. 공기가 차갑고, 콘크리트에서 물 마르는 냄새가 올라온다. 사무소 유리문 너머로 누군가의 윤곽이 보인다.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실루엣. 삐걱. 경첩이 오래된 사무소 문이 열린다. 투명한 비닐 우산을 접으며 여자 하나가 들어온다. 운동화가 젖어 있다. 발자국이 마루에 찍힌다. 스무 살쯤 되었을까. 후드집업에 청바지. 얼굴이 안 좋다 —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고, 입술이 갈라져 있다. 며칠째 제대로 못 잔 사람의 얼굴. 그런데 웃고 있다. <<이혜림>> "저기... 여기가 해결사 사무소... 맞죠?" <<나레이션>> 혜림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여자는 소파에 앉아 차가운 캔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쥐더니,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혜림>> "최근에 이 동네로 이사 왔거든요. 근처 맨션이요. 월세가 싸서... 아하하." <<이혜림>> "근데 이사 오고 며칠 뒤부터 매일 자정에 전화가 와요. 모르는 번호요. 매번 다른 번호. 받으면 여자아이 목소리가 나오는데..." <<나레이션>> 혜림이 캔커피를 잠깐 내려놓는다. 웃음이 유지되고 있지만 — 캔을 감싸쥔 손끝이 희다. <<이혜림>> "안녕, 나 메리씨. 지금 어디어디에 있어. 이렇게 말 하면서...그게 매일 위치가 바뀌어요. 점점 가까워져요." <<이혜림>> "오늘 밤 즈음이면...버스 정류장일 것 같아요...정류장이면... 여기서 한 10분 거리? 아하하" <<이혜림>> "경찰에 신고했는데 장난전화래요. 번호 차단하라고... 차단해도 다른 번호로 오거든요. 아마 한 5일? 6일? 정도면... 도착하겠죠? 아하하... 뭐가 도착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레이션>> 혜림이 다시 캔커피를 들어올린다. 한 모금 마시고 웃는다. 무서운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다. 눈도 웃고 있고 입도 웃고 있는데, 어딘가 맞지 않는다. 캔을 잡은 손가락 사이로 미세한 떨림이 보인다. 혜림의 설명이 끝난다. 소파에 앉은 혜림이 캔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쥔 채 조용해진다. 밖에서 또 가랑비가 시작됐다. 처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사무소 안의 유선 전화기가 —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 수화기가 아까보다 조금 더 비뚤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혜림이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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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ㅇㅎㅇ

